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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정보] 서양 미술의 역사

by 두리두밥2 2024. 4. 29.

서양 미술사

 

서양 미술의 역사

 선사 시대

기원전 4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 이후 인류는 거듭하여 발전하면서 최초의 미술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는 돌 조각품을 만들게 돼요. 기원전 3만 년에서 2만 5천 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조각품은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미술 작품 중 하나라고 여겨지고 있어요. 현재 미의 기준과는 다른 퉁퉁한 몸집의 여자 조각이에요. 사진을 보시면 아실 거예요. 고대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들은 정확한 제작연도를 당연히 추정하기 힘들어요. 또, 작가가 어떤 민족인지도 알 수 없어요. 고대의 미술 작품들은 대부분 유럽과 남부 러시아를 거쳐 아주 넓은 범위의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어요. 그 미술 작품들의 재료는 대부분 돌이나 짐승의 뼈이며, 그 재료들을 다듬은 조각품이거나 혹은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들이에요. 고대에 만들어진 미술 작품들은 용도가 관상용이 아닌 종교적이나 교육적인 이유라고 추정돼요. 

 

 고대_미노아 문명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3000년의 오랜 옛날로부터 시작돼 기원전 2000년경에는 가치나 정도에 있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고도의 문화를 이룩했어요. 미노아 문명은 크레타섬에서 자생한 문명으로 이집트의 중왕국 시대에 해당돼요. 크레타인은 대리석이나 청동의 큰 조상은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미술의 다른 분야에서 예술적인 재능을 펼쳤어요. 벽화를 보면 크레타인들은 특히 자연이나 동물에 대해 친숙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요. 

 

 

 고대_미케네 문명

미케네 저가 특색은 특히 건축에 나타나요. 미케네의 궁전은 크레타의 것과 같은 관이 아니고 언덕 위에 쌓아 올린 거대한 성이에요. 미케네나 티린스의 산성이 대표적이에요. 성 입구에서 차례로 통로를 더듬어 궁전의 깊은 곳에 들어가면 귀중품의 구조나 배치에 있어서 미케네인은 고유의 풍습을 고수하고 있어요. 가장 눈여겨볼 점은, 앞뜰을 가진 메가론을 채용한 것인데, 이때 메가론이란 그리스어로 넓은 방이란 뜻이에요. 미케네 궁전은 건축의 근본 형식에 있어서 그리스적인 특징을 나타내지만, 일반적으로는 크레타 미술의 영향을 받기도 했어요.

 

 

 고대 그리스

크레타와 미케네의 미술은 그 후의 시대인 그리스 미술과 비교해 미적 감각이나 미술상의 양식에 있어 매우 달라요. 그리스의 미술은 극히 조소적이며 간소하고, 장중한 반면, 에게해 미술은 회화적, 공예적이며 기념비적인 조각은 근소한 예외를 빼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요. 기원전 10세기말에 이르러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을 기하학적 모형으로 표현하는 양식이 나타나 기원전 8세기까지 유행했어요. 그 후 기원전 7세기부터 7세기에는 이집트, 오리엔트와 접촉하면서 대리석 기념물을 제작하는 방식을 습득했어요. 그리스 건축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신전이며, 또한 그리스 건축 구성의 특색과 아름다움은 신전에 분명히 나타나 있어요.

 

 

 에트루리아

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 반도에 최초로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에트투리아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토스카나 지방부터 로마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이탈리아 거의 전역을 지배한 민족이에요. 기원전 7세기부터 이탈리아 남부 그리스 식민 도시를 통해 그리스 문화와의 접촉이 빈번했고, 기원전 6세기 이래 강한 영향을 받았죠. 에트루리아인이 항아리에 그린 그림이나 분묘의 벽화 주제가 그리스적 요소를 보이고 있음을 통해 알 수 있어요. 그 외에도 건축, 조각, 회화, 공예 등 특히 조형 분야에서 독자적인 예술을 발전시켰으며, 에트루리아인의 분묘 예술이 바로 그 증거예요. 에트루리아 건축을 가장 특징짓고 있는 것은 분묘인데, 분묘의 형식은 시대에 따라 상당히 달라요. 정자형, 장방형, 원형, 사각형 등 각양각색이에요. 가장 오래된 유적은 빌리노바 문화와의 혼성 기라고 해요. 기원기 10세기부터 기원전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그 당시의 분묘 형식은 우물형이며, 그 가운데에 뼈항아리르 놓는 감실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 이후 기원전 8세기에 와 새로운 형식의 장방형 분묘가 만들어졌고, 기원전 7세기말 이후에는 궁륭 천장을 가진 순연한 분묘 건축 방식이 나타났어요. 에트루리아인은 여러 가지 형태를 한 분묘를 만들고 거기에 많은 일용품을 묻으며, 분묘의 벽면을 아름답게 채색한 벽화로 장식했어요.

 

 

 고대 로마

로마 미술은 북방의 에트루리아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 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에요. 로마는 현실적, 행동적인 요소를 에트루리아인으로부터 받아 계승하면서 그리스적 형식을 모방했어요. 기원전 2세기 후,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어요.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었고, 그리스의 명작을 모방하기도 했어요.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겨졌고, 그 조각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변형되어 갔어요. 로마 미술의 특성은 건축에서 발휘되고 있었어요. 로마의 건축은 기둥과 들보로 되는 그리스 건축의 구성과 에트루리아의 성문이나 분묘에 쓰이고 있는 아치형을 사용했어요. 구조면에 있어서 아치형의 시멘트가 건축에 채용돼 거대한 건축의 건조를 가능하게 했어요. 조각에 있어서 그리스의 영향이 특별히 현저하여 기원전 2세기 후반,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고, 또한 파시텔레스를 비롯해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를 로마로 불러들여 고전 명작을 모방시키게 했어요. 로마의 회화는 헬레니즘 회화의 수용에서부터 시작했어요. 기원후 79년에 일어난 베수비오산의 분화로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에 남아있는 벽화를 통해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의 벽화를 알아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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